아브라함은 믿음의 아버지라고 한다.
아버지는 신앙의 성숙함을 기대하게 된다.
우리는 부모로서 어떤 모습을 보이고 있는가?
우리는 늘 부족하게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늘 미숙한 모습을 보여주며 살아간다.
우리 믿음의 아버지도 완벽하지 못했다.
삶에 지치고 고단하였고 가족들에게 상처를 남기는 못난 부모였다.
그런데 왜 그가 믿음의 아버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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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근이라는 어려운 상황이 닥치자 이땅에 거류민과 나그네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도 우리는 어려우면 약한 사람들에게 불만과 원망을 쏟아낸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애굽으로 가려고 한다.
그것은 더 잘살기 위해 간 것이 아니다.
살아남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아브라함은 원래 유목민이 아니었다.
갈데아 우르에서 가나안으로 애굽으로 이동하는 그의 모습은 어려운 환경에 놓여진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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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히 아름다운 아브라함의 아내는 아브라함에게 위협을 준다.
그것이 애굽과 우리의 세상이다.
작은 히브리인 남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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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 위협앞에서 더 중요한 것을 포기하는 자기연민에 빠지고 남편의 책무를 버렸다.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아내를 판 것이다.
일종의 공황상태이다.
어리석고 이기적인 인간의 바닥을 드러냈다.
당시에도 결혼관계는 다른사람이 침범할 수 없는 배타적 관계였다.
목숨을 구하기 위해 아내임을 부정하고 가정을 깼다.
자신도 자각하지 못하는 악함과 비겁한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위기의 순간에 자식을 낳지 못한 아내에 대한 나쁜 속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마치 위기의 순간에 예수님을 베드로가 부인하듯이 아브라함은 사라를 부인하고 있다.
사라는 아브라함의 요구에 대해 거부하기를 포기한다.
스스로 가치없다고 생각하기에 그대로 받아드린다.
그 시대와 세상의 환경에 길들여져 있는 것이다.
이 모습속에 어디 하나님의 신앙이 드러나고 있는가?
가정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이 아브라함의 가정에는 보이지 않는다.
가정은 절대적으로 지켜져야 한다.
어떤것도 가정을 방해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사라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동등하게 불러주셨다.
그런데 그것을 잊었다.
세상적으로는 아브라함이 가장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동등하게 부름받았다.
교회는 우리가 가치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조차도 하나님이 불러주신 모두가 동등한 형제, 자매이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하나님이 동등하게 불러주신 형제, 자매를 팔고 있다.
아브라함을 불러주시고 동행하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을 잊어버렸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초라한 인생이 된 것이다.
우리도 하나님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인생이 된다.
'주여 당신 없이는 우린 아무것도 아니리'
아내를 판 이야기는 한번이 아니었다.
믿고 수십년이 지나도 똑같이 아내를 파는 모습을 보인다.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다.ㅠㅠ
지금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할때 우리는 별볼일 없다.
우리에겐 소망이 없다.
하나님은 그런 보잘것없고 사악한 인생에 개입하신다.
하나님께 소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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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사라를 구원하기 위하여 큰일을 행하셨다.
오늘도 우리 가정을 회복시키시기 위해 개입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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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는 이해할 수 없고 억울해 한다.
하나님은 어찌하여 우리를 사랑하시고 구원하시고 편드실까?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구원해 주셨다.
그 하나님이 우리를 끝까지 돌보시고 인도하신다.
우리의 삶은 주님 손에 달려 있다.
하나님은 못난 아브라함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신다.
우리에게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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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을 통하여 세상에 복이 되기를 끝까지 놓치 않으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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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은 부끄러운 마음을 가지고 처음 제단 쌓은 것처럼 하나님께 고백을 드린다.
하나님의 손이 아브라함을 붙들고 계신다.
그리고 가정이 회복되어 가고 축복의 통로가 되었으며, 믿음의 조상이 되었다.
세상에 복주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의 삶도 복주는 삶이 되었다.
우리는 위기에 처하면 예수믿은 세월과 상관없이 부끄러운 옛모습으로 돌아가 악한 바닥을 드러낸다.
그런 우리는 어떻게 그리스도의 향기를 드러낼 수 있는가?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꼭 붙어 있을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을 도와 주시고 주안에 거할때 세상의 복이 된다.
우리의 작고 초라한 모습을 주께 내어놓고 주님이 우리를 이끌어 주실 것을 믿고 주께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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