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설교

고린도에서 예루살렘까지, 2차 전도여행 완주 - 박영호 목사

by 나를단련 2020. 7. 19.

사도행전 18:12-22
22절까지가 바울이 제2차전도여행을 완주한 사건이다.

주후 52년 가을에서 주후 53년 봄에 3차 전도 여행을 마쳤다.
18:1-11 아테네에서 고린도로 와서 고린도 교회를 세웠다.
밤에 환상중에 예수께서 바울에게 두려워 말라고 하신다. 바울은 고린도에서 말하고 싶지 않을 만큼 상황이 너무 두려웠다.
아테네에서는 대화가 가능했었으나 고린도는 우상숭배가 심하여 달랐다. 그리고 부도덕한 도시였다.
바울은 1년 6개월 동안 하나님 말씀을 가르쳤는데 위기가 있었다는 사실을 누가가 기록하고 있다.
고소 사건에서 해를 입지 않았다는 기록이다.

갈리오가 아가야 총독이 되었을때, 글라우디오가 로마의 황제시절이다.(12절)
당시 로마에 세네카라는 영향력 있는 지식인이 있었다. 세네카와 갈리오가 형제이다. 그래서 총독으로 파견된다. 대단한 분별력이 있었던 사람이다.
유대인들이 바울을 고소했을때 바로 판결할 수 있었던 사람이다. 주후 51-52년의 시기이다.
델포이 신전에 이 기록들이 있다.

그리스에는 많은 신전이 있다.
파르테논 신전, 아프로디테 신전, 아데미 신전 등.
신전이 있으면 그런 신을 전파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런 시기에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러 다닌 것이다.

그 당시에 고린도에 있는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오랜 시간동안 끼친 영향력보다 바울이 잠깐 들어와 끼친 영향이 커지니까 (유대교의 회당장이 기독교인이 될 만큼) 마음속에 분노가 일어나면서 율법을 무시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하며 사람들을 속인다고 바울을 고소하게 되었다.
유대인이 말하는 하나님과 바울이 말하는 하나님이 달랐다. 유대인은 성부 하나님만 있지만 바울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율법을 어기면 돌에 맞아 죽는 것이나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권한이 유대에 없기 때문에 재판을 통해 바울을 죽이려고 하지만 갈리오 총독에 의해 실현할 수 없게 된다.
당시 로마는 많은 신을 섬기기 때문에 종교에 대한 문제는 로마 재판에 올릴 수 없다고 하며 법정에서 유대인들을 쫓아낸다.(14-16절)

회당장 소스데네는 유대교를 대표하는 사람인데 유대인들이 재판장에서 쫓겨난 분노를 표하고 책임을 묻기 위해 법정 앞에서 그 사람을 때렸다.(17절)

바울은 충분히 고린도에 머물면서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고 이후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함께 데리고 고린도를 떠난다. 바울은 민수기 6장에 나오는 나실인 서원을 했다. 그래서 그 기간을 마치면서 머리를 깎았다. 왜 그리스도인인 바울은 나실인 서원을 했을까? 바울은 기독교 복음의 본질과 관계없다고 생각하지만 유대인과 연결고리를 계속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수단이었다. 바울은 회당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했기 때문에 유대인을 위한 서원이었던 것이다.(18절)

바울은 유대인이 동족이기 때문에도 그렇게 행동했지만, 그 보다는 한영혼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인 것이 더욱 크다.
그 사랑은 복음서에 초청한 사람들이 잔치에 오지 않을때 거리에 나가 누구든지 초청하라는 마음을 알고서 그런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 하고자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 사랑이 있어야 우리도 복음을 전할 수 있다. 그 사랑을 깊이 새롭게 회복해야 세상에 나가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것이다.
한 영혼 사랑은 진지하고 집중하고 열정이 있어야 한다.

바울은 고린도를 떠나 겐그리아에서도 복음을 전한다. 머물렀던 모든 곳에서 복음을 전하고 공동체를 세운다. 하나님이 바울을 통해 하신 일이다. 입을 닫고 있으면 그런 변화는 없다.

에베소에 와서도 그리스도의 사랑에 매여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서 복음을 담대히 전한다.(19절)

바울은 하나님의 뜻을 존중한다. 2차 전도여행의 기간이 만료되어 몸도 마음도 지쳐있다.


에베소에서 가이사랴(예루살렘)에서 교회의 안부를 묻고 안디옥으로 간다.(22절)

각 사람도 달려가야할 여정이 다 다를 수 있어도 하나님께서 완성 하길 기대하는 일들을 포기하지 말고 삶의 여정을 완주해야 한다.
달라진 환경을 탓하지 말고 본질인 복음을 전하는 일을 중단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은 바울시대처럼 대면전도를 하기에 어려운 시대이다. 그러나 그냥 제자리에 안주해서는 안된다. 바울도 어려운 시대에 있었다. 한 영혼을 살리는 일에 결코 주저함이 없어야 한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