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 나는 성령 하나님을 믿습니다. - 문세원 목사 / 누가복음 7:36-50, 에베소서 1:13-14 / 창원새순교회
하나님은 누구신가?
하나님을 알게 될 때 우리의 인생은 바뀔 수밖에 없다.
하나님을 만나야 우리가 변한다.
당신은 구원받은 사람인가?
교회 생활을 잘해도 구원의 확신이 없을 수 있다.
정말 스스로가 죄인인 줄을 깨달아야 한다.
교회에서 가르쳐 준다고 죄인이 아닌 것이다.
우리는 상처를 받으면 상처 준 사람을 잘 기억한다.
그리고 용서하지 못한다.
그러나 내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죄인으로 다른 사람에게 상처 준 사실은 기억하지 못한다.
선지자 나단은 다윗 왕에게 바로 당신이 죄인이라고 지적한다.
우리는 심판대 앞에까지 설 때까지 스스로 죄인인 것을 알지 못할 수도 있다.
책 : 톨스토이의 부활
심판대 앞에서 심판관으로 선 사람이 스스로 죄인임을 깨닫게 된다.
우리의 죄는 용서받을 수 있을까?
본문에서 바리새인은 예사롭게 하나님을 초청했다.
그런데 바리새인은 손님에게 당연히 해야 할 발 씻을 물과, 영접을 하지 않는다.
바리새인은 자기가 죄인임을 알지 못했다.
그런데 본인은 죄인이 아니며 여인이 죄인이라고 알고 있었다.
바리새인은 하나님이 필요치 않았다.
그에게 간구와 감사는 없다.
그의 신앙은 도덕적, 윤리적 신앙이었다.
매주 교회 가고, 금식하고, 헌금하였다.
그런데 평생 하나님은 몰랐다.
그 결과 하나님 앞에서도 하나님을 알아보지 못하여 영접하지 못했다.
그의 영혼은 죽어가고 있다.
우리도 그렇다.
본문에 갚을 것이 없다고 말한다.
우리는 파산의 상태이다.
나는 괜찮다고 말해도 스스로 자신의 죄를 해결할 수 없는 상태이다.
사함이 받은 것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한다.
스스로가 의롭다 하면서 하나님께서 주실 구원을 받지 못한다.
그런데 어떤 죄를 지은 한 여자가 있다.
그 여자가 찾아오신 예수님을 만났다.
그리고 예수님을 만나 자신의 죄를 고백한다.
자기의 죄를 부정하지 않았다.
주기도문의 죄는 빚이라는 의미이다.
우리의 빚이 너무 커서 우리는 스스로 값을 수 없다.
1만 달란트는 약 6조 원인데 갚을 수 없는 큰돈을 말한다.
우리는 스스로 죄인임을 깨달았어도 우리의 죄를 스스로 갚을 수가 없다.
죄인은 겸손히 하나님 앞에 엎드려 우리의 구원자 예수님께 부르짖을 수밖에 없다.
나는 죄인입니다. 용서해 주세요.
용서는 죄인에게 베풀어지는 하나님의 은총이다.
갚을 것이 없으므로 탕감하여 주었으니...
하나님은 우리의 죄의 크기와 관계없이 모두 탕감해 주셨다.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것이 은혜요, 복음이요, 구원이다.
이분은 누구신가?
사람은 사람의 죄를 용서할 수 없다.
우리 주님은 공의의 하나님이다.
우리를 대신하여 스스로를 제물로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셨다.
그래서 용서하실 수 있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사람은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여인은 예수님의 발을 눈물로 닦고 향유를 부어 머리카락으로 닦아 엎드려 경배한다.
그것이 예배이다.
예배는 용서받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경배하는 행동이다.
네 죄가 구원받았으니 평안히 가라.
이 이야기는 여인에게 일어난 일이며 오늘 우리에게도 일어나는 일이다.
우리가 죄인임을 고백하고 주님께 나아가면 죄 사함을 받고 영생을 주신다.
이것이 진리인가?
성령님이 우리의 마음을 열어주실 때 가능하다.
이것은 나의 이야기이다.
나는 죄를 용서받은 것과 육체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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