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 새로운 종족의 출현 - 권해생 고려신학대학원 신약과 교수 / 사도행전 11:19-26 / 창원새순교회
성령강림절은 매우 중요한 절기 이다.
성령이 강림하시는 곳에는 예수님이 전파된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한다.
불통을 소통으로 바뀌고 깨어진 관계가 회복된다.
그것이 성령받은 성도의 특징이고 그런 성령을 사모해야 한다.
그런데 성령을 받은 사람과 교회도 위기가 찾아온다.
그때는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말씀, 기도, 구제이다.
기본이 충실한 사람이 회복될 수 있다.
안디옥 교회를 통하여 성령충만한 교회와 사람은 어떤 모습인가를 알아본다.
안디옥 교화에서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사람마다 각각의 특징이 있다. 그럼 그리스도인의 특징은 무엇인가?
성령충만한 그리스도인은 어떤 특징이 있을까?
그리스도인은 처음부터 남 달랐다.
유대인과도 달라서 할례와 율법을 강조하지 않는다.
헬라인과도 달라서 지식이나 철학을 고상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
이 사람들은 모일때마다 그리스도를 부르고 흩어질때 그리스도를 전파한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이 새로운 종족으로 처음으로 불리워진다. 그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다.
그들의 삶은 남달라서 세상에 충격을 주었다.
1.
고난에 대한 태도가 달랐다.
안 좋은 일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절대 포가하자 않았다.
안좋은 일 뒤에 있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본다.
세상사람들이 볼때는 이상한 종족이다. 이 이상한 종족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명칭을 붙였다.
세상사람들이 볼때는 남다른 사람들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이다.
사도행전 11장
19. 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20.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21.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예루살렘 교회에 안좋은 일이 생겼다.
스데반이 죽고 예루살렘 교회에 핍박이 있었다.
피신을 했는데 어떤 사람들은 안디옥까지 피신을 갔다.
그런데 그곳에서도 복음을 전해 부흥되었다.
세상 사람들이 보는 예루살렘 교회 교인들은 실패자였으나 하나님은 그들을 사용하여 하나님이 승리를 이끌어 내신다.
그래서 실패했는데도 실패에 좌절해 있지 않는다. 실패 뒤에 계신 하나님을 믿음의 눈으로 본다.
바울은 자신의 계획으로는 소아시아로 가고 싶었으나 하나님이 환상을 보여 주셔서 마게도냐로 가게 된다.
루디아를 만나고 루디아 가정을 통하여 복음이 전해진다.
그런데 점치는 귀신들린 여종을 쫓아 보낸후 그것으로 돈을 벌었던 사람들이 바울을 핍박한다. 그리고 감옥에 갇힌다.
그런데 감옥에서 바울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바울과 실라는 노래를 부른다.
사도행전 16장
25.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이상한 종족이다.
이렇게 이 사람들은 자기들의 어려움 뒤에 있는 하나님을 생각하며 노래를 부른다.
찬송가 620장 2절
주님이 뜻하신일 헤아리기 어렵더라도 언제나 주 뜻안에 내가 있음을 아노라
어떤일이 있더라도 나는 주님의 뜻 안에 있다는 것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본다.
찬송가 620장 후렴
사람과 말씀들이 나를 더욱 새롭게 하니 때로는 넘어져도 최후 승리를 믿노라.
이 믿음 더욱 굳세라. 주가 지켜주신다. 어둔밤에도 주의 밝은 빛 인도하여 주신다.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교회에서 서로가 어떤지 모르지만 각자 가지고 있는 인생의 짐이 있다.
그럼에도 교회에 모인다.
우리 인생의 무게와 마음의 짐을 하나님이 그냥 보고 계시지 않는다.
2.
기쁨의 코드가 다르다.
사도행전 11장
22. 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23. 그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권하니
바나바가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는 것은 세상사람과 다른 점이다.
다른 사람의 믿음이 생긴 것을 보고 바나바가 너무 기뻤다.
믿는 사람이 교회가 잘되는 모습에 너무 기쁘다.
기쁨에 코드가 다르기 때문이다.
사도행전은 누가복음과 이어서 이해해야 잘 이해가 된다.
눅10장에서 예수님이 70명의 제자들을 파송했는데 귀신이 떠나가서 돌아와 예수님에게 그 이야기를 흥분하여 들려준다.
예수님은 "그 귀신이 떠나간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 너희에게 믿음이 생겨 구원받은 것을 기뻐해라." 라고 말씀하신다.
눅15장에서는 잃은 양, 드라크마, 아들을 되찾은 비유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것이 기쁨의 이야기인데, 두번째 기쁨의 이유는 다른 사람이 예수님을 잘 믿어서 기쁜 것이다.
그것은 믿음이 있는 사람만 기쁜 것이다.
우리만 그런 것이다. 세상 사람들과 기쁨의 코드가 다르기 때문이다.
셋째는
믿음으로 핍박당할때 하나님이 상을 주실 것을 믿고 기뻐해라.
세상의 기쁨은
영화배우들의 수상의 기쁨, 스포츠 선수들의 승리의 기쁨, 농부의 땀흘린 수확의 기쁨들이 세상사람들이 이해하는 기쁨이다.
열심히 노력한 결과에 대한 것이다.
성경에는 이런 종류의 기쁨이 하나도 안나온다.
이것은 예수 안믿어도 누릴 수 있으나, 예수님을 믿어야 알수있는 기쁨이 있다.
나의 믿음, 다른 사람의 믿음, 믿음의 상에 대한 믿음을 두고 그리스도인들은 기뻐한다.
찬송중에
"우리 서로 받은 기쁨은 알 사람이 없도다."라는 가사가 있다.
이 기쁨은 우리만 알 수 밖에 없는 기쁨이다.
예배에 나오는 것은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특별한 선물이다.
3.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
사도행전 11장
23. 그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권하니
차별된 특정한 사람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믿음으로 권면한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믿음을, 믿음이 있는 사람은 더 견고한 믿음을 권면했다.
한때는 자신들을 핍박했던 회심한 바울을 찾아가 데리고 와서 동역을 권했다.
사도행전 11장
24.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
25.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26.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바나바는 성령 충만한 사람으로 사람의 외모가 아닌 믿음으로 다른 사람을 보았다.
이런 지도를 받은 안디옥 교회는 사람들을 믿음으로만 보았다.
안디옥 교회는 믿음으로만 지도자가 세워진다.
사도행전 13장
1.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바나바, 니게르 시므온(흑인), 구레네 루기오(아프리카), 젖동생 마나엔(귀족), 사울(적대자) 등 다양한 출신이지만 다른 기준이 아닌 믿음으로만 서로를 세워준다.
이런 사람들이 모인 안디옥 교회로 열방이 복음화 되었다.
그 어떤 사람도 믿음 말고는 세상의 눈으로 차별하지 않았다.
전북 김제 금산교회 이야기가 있다.
100년전 세워진 이 교회에는
조덕삼 지주(부자)는 자기의 땅을 교회에 기부했다.
평신도 대표로 영수의 자리에 그 집 머슴 이자익이 되었다.
사람들은 지주의 머슴이 지도자가 된 것에 웅성였다.
공동의회에서 지주가 나서서 발언을 했다.
"이자익은 영수 일을 잘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후로 지주는 머슴을 영수로 모시고 교회를 충성스럽게 섬겼다.
또한 이자익을 신학교육을 시켜 목사로 카웠다. 머슴은 담임목사로 자신은 장로로 금산교회를 섬겼다.
이자익 목사님도 훌륭하지만 조덕삼 장로님이 더욱 훌륭한 분이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엔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이다.
어떤 사회 계층도 상관없이 믿음으로 바라본다.
지역과 인종 빈부의 차이를 가지고 판단하는 것이 아닌 형제와 자매로 여기는 사람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른다.
교회는 믿음의 눈으로 고난뒤에 하나님을 믿고 믿음으로 기뻐하고 존중하고 성령충만하고 하나님께 칭찬 받은 교회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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