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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 미치엘봄 지음, 공경희 옮김 / (주)살림출판사 / 1989년

by 나를단련 2022. 3. 14.
떠난 후에도 우리는 다른 이들의 마음속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없는 상태에서도 관계가 지속되길 원한다면 여기 있는 동안에 그 관계들에 전념해야 합니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이란 책을 내가 접한것은 2022년이지만, 이 책이 나온것은 매우 오래 되었다. 어쩌면 그만큼 책에 관심이 없이 살아온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과 함께 그렇다면 나는 무엇에 관심을 가지며 살아왔는가? 하고 생각해 본다.

위 첫문장을 밑줄을 치며 생각해 본다. "떠난 후..." 평소 죽음에 대한 생각과 말을 하지 않는 편이지만 직감적으로 이번 독서의 주제는 죽음이라는 것을 알았고, 어떤 이야기를 풀어갈까 궁금했다. 그런데 우선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관계... 나는 관계에 미숙한 편이었다. 지금도 그렇다. 나만 그럴까? 지속되길 원하는 관계... 나이가 들어가니 그런 관계에 대한 열망이 생겨난다. 그러기 위해선 전념해야 한다고 말한다. 전념.

주제는 '인생의 의미' 였다. 교수님은 자신이 인생에서 얻은 경험들을 가지고 강의해 나갔다.

저자의 대학시절 옛 은사가 어느날 루게릭 병에 걸렸다. 루게릭 병은 서서히 몸이 굳어져 죽어가는 병이다. 교수님과의 관계를 떠올리며, 만났을때 반복적으로 만나서 교수님의 이야기를 논문으로 작성하고자 매주 화요일에 만나기로 정했다. 제자의 죽음에 대한 질문을 통하여 교수님 인생의 마지막 강의가 시작되었다. 저자가 책으로 발간해 낸 지금 이 마지막 강의는 저자 자신만에 대한 이야기에서 이 책을 읽고있는 많은 독자들에게 모리교수님이 죽기전 마지막으로 해주시는 강의가 되었다.

몇 차례 숨을 들이쉬어 보게. 이제 한 번만 더 들이쉬어 봐.
하지만 이번엔 숨을 내쉴 때 다음 들이마실 때까지 숫자를 얼마나 셀 수 있는지 헤아려 보게나.
일, 이, 삼, 사, 오, ......, 육십구, 칠십

교수님이 제자에게 말한다. 숨을 참아보라고. 나도 따라 숨을 참아 보았다. 제자와 같이 칠십까지 속으로 셀 수 있었다. 교수님은 그것이 건강할 때 가능한 것이라고 한다. 본인은 점점 그 세는 숫자가 짧아진다고...
언젠가 나도 그 세는 숫자가 짧아질 때가 오겠지? 그런 생각을 하니 슬퍼진다. 그것은 비단 폐기능으로 한정된 문제는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생각도, 육체의 기능도 모두 퇴화되어 간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다가 결국 어느 기능이 정지되어 죽음에 이르는 것일 것이다.

밀고 당김의 긴장은 팽팽하게 당긴 고무줄과 비슷해. 그리고 우리 대부분은 그 중간에서 살지.
(중략)
사랑이 이기지. 언제나 사랑이 이긴다네.

관계에 있어서 가장 재밌고 짜릿한 지점은 밀당의 최대치에 이르렀을 때 같다. 연인관계도, 친구관계도, 직장에서의 관계도... 그러나 힘을 잘 못쓰면 다치거나, 다치게 한다. 적절한 밀당은 짜릿하다. 그러나 교수님은 이기고 지는 관계에서는 사랑이 이긴다고 말하신다. 그렇지 사랑이 이기지... 하며 공감을 한다.

 

세상, 자기연민, 후회, 죽음, 가족, 감정, 나이드는 두려움,
돈, 사랑의 지속, 결혼, 우리의 문화, 용서, 완벽한 하루, 작별인사


위 주제를 가지고, 제자는 매주 화요일 교수님과 대화를 하고 기록으로 남긴다.
갑자기 그런생각이 든다. '나는 내 아버지랑 이런 주제에 대하여 대화할 수 있을까?', 정말 이런 주제를 놓고 대화하고 싶다.
그러나 두가지 어려움을 깨달았다. 첫째은 우리 아버지는 교수가 아니다. 부분부분 생각을 해 보셨겠지만, 글쎄... 라는 생각이 든다. 둘째, 내가 제자 같은 사람이 아니다. 제자는 스포츠 관련 기사를 쓰는 기자이다. 나는 대화에 또 질문에 미숙하다. 더구나 가족에게는 더욱 어려움이 생긴다. 그러나 혹시 아나? 시간이 좀더 지나 아버지와 내게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을때 위 주제에 대하여, 책을 펴내는 목적이 아닌... 단지 아들에게 자손에게 하고 싶은 유언이 있을지... 그런때가 오면 잘 생각해 두었다가 물어봐야 할까 하다가도, 그런 시간이 나에게 주어질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미치, 우리의 문화는 죽음이 임박할 때까지는 그런 것들을 생각하도록 놔두질 않는다네. 우리는 이기적인 것들에 둘러싸여서 살고 있어. 경력, 가족, 또 주택융자금을 갚아 낼 돈은 충분한가, 새 차를 살 여유가 있는가, 고장 난 난방 장치를 수리할 돈이 있는가 등등...... .

죽음이 임박해야만 교수님과 같이 인생을 돌아보며 무엇이 소중한가에 대한 깊은 생각과 정리를 할 수 있는 것 같다.
또한 어린 사람이 죽음을 생각하는 것도 바람직해 보이지는 않는다.
어려서는 먹을것, 학교다닐때는 공부, 직장, 결혼, 주택마련, ... 건강, 관계, 생명. 시기에 맞게 챙겨 나가야 할 것들이 많다. 건강과 관계에 집중해야 할 때 죽음에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는 않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교수님은 그 최종적인 것, 즉 죽음에 집중할 때 앞에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찾을 수 있다고 말해 주시는 것 같다.

디트로이트에서는 신문사 데모 집단이 공휴일을 맞아 경영진에게 노동조합의 단결된 힘을 과시하기 위한 대규모 시위를 준비하고 있다. (중략)
캘리포니아에서는 O.J. 심슨의 변호인단이 대단한 명사가 되어 있었다. (중략)
모리 교수님의 방에서는 귀중한 하루의 삶이 계속되었다.

모리 교수님이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동안에도 세상의 관심사는 개인의 죽음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면 반대로 우리는 개인의 소중한 삶에 주목해야 한다는 역설적인 이야기를 해주고 있다. 교수님은 제자에게 어떻게 죽어야 할지를 배우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배울 수 있다고 말씀해 주신다. 그러면 세상에 모든 것을 자세히 감상할 수 있고, 진정한 감사를 할 수 있다고 전해준다.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일들을 하게. 그러면 절대 실망하지 않아. 질투심으로 괴로워지지도 않고 말이야. 다른 사람의 것을 탐내지도 않게 되지. 오히려 그들에게 베풀면서 만족감을 느끼게 될꺼야.

다른 사람들이 의미있는 삶이라고 말하는 것들... 그러나 그것을 행동함에 있어서 다른 사람에게 뽐내려고 하는 것이라면 관두라고 말한다. 어느 계층에 잘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닌, 열린 마음으로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일들을 베풀면서 하라고 권한다. 그 길이 쉽지는 않겠지만 그렇게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고 싶다.

나는 다른 사람과 온전히 함께하는 시간이 있다고 믿네. 그건 상대방과 정말로 '함께' 있는 것을 뜻해. 지금처럼 자네와 이야기하고 있을 땐 난 계속 우리 사이에 일어나는 일에만 신경을 쓰려고 노력하네.

서두르지 말자. 특히 인생의 의미를 찾기위해 서두르지 말라고 제안한다. 타고다닐 차, 살 집, 들어갈 직장 등. 그런 것들은 공허한 것이다. 하나를 갖게되면, 다른 것을 찾아 또 뛰어가게 만드는 것들이다. 관계에 있어서도 지금의 관계에 집중해야 한다. 다음 관계를 생각하며 마음을 뺏기지 말아야 한다. 우리 관계에만 집중해야 한다.

남미에 '데사나'라는 부족은 이 세상 피조물의 모든 에너지양은 고정되어 모든 탄생은 사망을 이끌고, 모든 사망은 탄생을 가져와 세상의 에너지가 동일하게 유지 된다고 말한다. 세상에는 어떤 원칙이 있다고 믿는 것이겠지?

죽기 전에 자신을 용서하라. 그리고 다른 사람도 용서하라.
(중략)
시간을 끌지 말게, 미치. 누구나 나처럼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건 아니야. 누구나 다 이런 행운을 누리지는 못하지.

자신과 타인을 용서하는데 시간을 끌지 말라고 말한다. 또한 누구나 용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용서... 쉽지 않다. 남도 나도. 그러나 그것이 잘 해석되고 정리되어 용서로 치료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곪고 썩어 상하게 된다. 나도, 남도. 마음에 쌓아 놓은 화, 스트레스 등을 빠르게 제거해야 겠다. 그래서 성경에도 그날에 화는 그날에 풀라고 하는 것인가 보다. 그러나 이런것이 행운이라고 하신 모리 교수님의 이야기를 보자면 누구나 쉽게 용서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만큼 용서도 훈련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교수님이 세상을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스페인에 있는 동생과 연락이 되었다.
(중략)
"네가 유지하려는 거리를 존중해."
(중략)
그가 허락하는 만큼 내 삶에서 그를 껴안고 싶다고.

저자는 관계속에서 동생과 풀지 못한 숙제가 함께 진행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자기 자신에게서 그 답을 발견하고 용서와 배려를 통하여 다시 관계를 회복하며 마무리를 하고 있다.
관계의 거리, 존중의 거리... 뭐라 말하던 그 거리가 중요하다. 적절한 서로의 거리를 무시하고 가까워지려고 하거나 멀리 떨어지면, 상대방은 뒤로 물러서거나 서운해 진다. 서로가 인정하는 거리에서 앞에서 이야기한 밀고 당김이 있을때 관계의 기쁨이 생겨나는 것 같다. 그 거리를 잘 찾아 좋은 감정을 느끼고 싶다.

끝으로,
죽어가는 교수님의 진솔한 이야기들을 통해 나의 인생여정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바르게 나아가고 있는가? 내가 정해 나아가는 목표는 올바른 방향과 가치가 있는 것인가? 잘 모르겠다.
사람마다 가치와 인생의 방향은 다 다를 수 있기 때문에...
그러나 한번쯤 이런책을 통하여 적절한 되짚음을 하고 지나가는 것은 필요하다.

그리고 인생을 살면서 내가 따르고 싶은 코치, 멘토, 스승 등이 있다는 것은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젊었을 적에는 그런 멘토가 있었으면 했었는데, 이제 나이가 드니 내가 그런 멘토가 되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다.
루게릭이라는 병은 아주 짧은 기간에 인생의 여정을 보내는 질병인데, 그렇지 않은 일반적인 경우라도 우리는 어쩔수 없이 죽음을 향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렇다면 누구나 그 시간을 소중하게 사용해야만 한다.

모리 교수의 이야기 중에 부모님 이야기가 있었다.
불행한 환경에서 극복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본인은 자식들에게 좋은 부모가 되려고 노력했던 모습이 엿보인다.
우리에게 결핍은 그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도전이며, 그것이 채워졌을때 더 좋은 영향을 주는 것이 되는 것 같다.

죽음을 생각하며, 나의 삶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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