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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 정약용 지음, 박석무 편역 / (주) 창비 / 1991년

by 나를단련 2021. 11. 12.

정약용은 조선시대 실학자이다. 1762년에 출생, 28세에 문과에 급제한 후 벼슬을 지내다가 1801년에 천주교에 대한 박해사건(신유사옥, 신유교옥)에 연루되어 40세부터 18년간 유배생활을 하였다. 유배기간 동안 500여권의 책을 남기고 1836년(74세)에 별세했다.

조선시대의 실학자는 어떤 의미일까? 하며 책을 읽었다. 조선시대는 성리학이 주류였다면, 실학은 주류가 아니었을 것이다. 또한 실학은 외래의 문화에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그 영향으로 천주교를 믿게 되었을 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이전의 학문과는 다른 학문을 추구했던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많은 서신과 책을 쓴 흔적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한문으로 쓰여진 책은 잘 번역해주는 사람이 없으면 내가 볼 수가 없다. 또한 번역된 책은 번역자의 생각과 주관이 포함될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정약용의 서신에서 자식에 대한, 형에 대한, 제자들에 대한 당부와 따뜻한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
그 시대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서신이었다는 점에서 성경에서 바울이 옥중에 쓴 서신과 같이 유배지에서 보낸 글로 인해 정약용의 생각이 어떠했는지, 또 관계된 사람들에게 향한 마음이 어떠했는지 잠시 보고간다.

그러나 번역된 문체 조차도 조금 어렵게 느껴져서 읽는데 지루하고, 맥이 끊길때도 있었다. 아마도 아직 독서의 내공이 많이 부족한것 같다. 번역가가 사명을 갖고 틈틈히 정약용의 편지를 수집하고 해석해주신 수고에 감사를 드린다.

참다운 공부길

정약용은 유배를 감으로써 자손들이 폐족이 되었다는 안타까움이 있었다. 그러면서 아들들에게 독서를 하라고 당부한다. 독서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독서를 통해 견문을 넓히고 가문을 세울 수 있는 기회를 잡으라고 계속하여 말해주고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유배지에서 지속적으로 아들들과의 서신왕래로 자녀교육을 해왔다는 점이 놀랍다. 지속적인 의지가 있지 않으면 안될일 일 것이다. 지금도 개인과 집안을 세우기 위해서는 독서를 해야겠다고 생각이 들었고, 나와 나의 자녀들에게도 계속 강조하고 싶다.


문명세계를 떠나지 말라

속담중에 사람은 키워 서울로 보내고 말은 키워 제주도로 보내라는 말이 생각난다. 정약용도 자식들에게 서울을 떠나지 말고 서울에서 가까이 있으면서 문화와 안목을 잃지 말라고 말한다. 21세기인 지금도 그래서 많은 젊은이들이 자연스럽게 그런것을 알아채고 서울이나 수도권으로 모이는 것일까? 하고 생각해 본다. 많은 사람이 모인 만큼 다른 무엇인가를 발견하여 견문을 넓히고, 더 풍성한 생각으로 갖고 살아갈 수 있는 것으로 아들들에게 당부했다고 생각한다.
역시 폐족이라는 이유로 자손들이 서울을 떠나 시골에 숨어 살지 않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마음이 담겨있었을 것이다.


힘써야 할 세 가지 일

실학자라고 해서 형식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구나 하고 생각했다. 본질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학자 같다. 그래서 내실도 중요하지만 그 내실이 바로 서기 위해서는 몸과 말, 얼굴빛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강조하고 있다. 나 역시도 행동하나하나, 말하는 것 하나하나, 그리고 거울을 보며 내가 어떤 얼굴빛을 나타내는 가를 잘 살펴가며, 공부를 해 나가야 되겠다는 생각이다. 그런 행동이 습관이 되어 나의 미래를 바꿔갈 수 있는 것이다. 단지 실력만 가지고는 나라의 일을 할 수는 없다.


근검과 절약

유배지에서도 아들들에게 집안을 어떻게 다스려라고 하는 가르침을 전한다. 또한 양반이면서도 농사를 함께 지어야 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효율적이고, 돈은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비교적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고 있다. 그러면서 그 중에 핵심은 근검이라는 이야기를 전한다. 유익한 일은 멈추지 말고, 무익한 일은 털끝만큼도 도모하지 마라고 덧붙여 강조한다.
이 이야기는 지금도 통하는 이야기인 듯 하다.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 든다.

수입을 헤아려 지출을 해야

영암군수에게 당부하는 말이다. 재물을 백성들에게 베풀려고 하는데, 제물이 부족하여 빼앗아서 주지 말라고 당부한다. 수입을 헤아려 지출을 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보면 많이 걷어 많이 나누어 주려고 하는 현상을 본다. 물론 부의 재분배에 대하여는 공감하지만, 또한 특수한 상황이라고는 생각되지만 몇차에 걸친 추경예산을 세운다는 것은 그만큼 많이 걷었거나, 많이 걷어야만 한다는 것으로 들린다. 물론 필요에 따라 하는 것으로 이해는 한다. 노파심에 관리들이 좀더 신중하길 바란다.
가정도 마찬가지로 수입만큼 지출을 해야하는데, 요즘엔 수입이상으로 지출을 하는 경우가 많다. 21세기라서 그런가? 그런 지출은 결국 부채를 늘릴 수 밖에 없다. 글쎄 경제학자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어쨌든 능력만큼 사용하고 아껴서 살아가야겠다.


학문은 반드시 해야 할 일

앞서서 아들들에게 독서를 강조했던 것 처럼 제자들에게는 학문을 강조하고 있다. 인간답게 살기 위해 학문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말한다.
학문을 하지 않는 사대부는 진정한 사대부가 아니라고 까지 한다.
그리고 학문을 하는 자세에 대해서도 이야기 한다.

아이들이 밥먹으면서 공부하고, 놀면서 공부하고 하는 것을 그냥 바라보아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했다. 정약용이 말한바에 따르면 자세가 바로서야 공부도 바로 된다는 것인데, 이 이야기는 요즘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조선시대도 똑같았구나 하고 생각했다. 따라서 공부를 할때는 공부의 자세를, 일을 할때는 그 일에 맞는 자세를 먼저 세우고 시작해야겠다.

또한 그저 내용을 읽는다고 학문이 습득되는 것이 아니다. 그 뜻이 무엇인가 찾으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독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내가 책 한권을 읽은데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이 책에서 무엇을 얻었는가? 또 그것은 무슨 말을 나에게 해 주기 위함인가? 나는 어떤 교훈을 받아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깊은 생각과 의지를 가지고 나를 변화 시켜나가야 할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문장이란 어떤 물건인가

이인영이라는 제자를 회상하면서 위와 같이 표현했다. 정약용은 스승으로서 제자를 보는 탁월한 안목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렇게 생겨야 학문에 대한 탐구의 열정과 또 습득하는 능력이 나타나는 것인지? 아님 학문은 하다보면 이런 인상이 발전되는 것인지? 궁금하기도 하지만, 지금은 둘다 상호 보완적이라고 생각하기로 한다. 요즘하나 깨달은 것은 공부를 하면 뇌가 활성화 되고, 뇌과 활성화 된 사람은 눈이 총명하고 얼굴에 생기가 비친다는 것이다. 반대인 경우 또는 뇌에 장애가 있는 경우는 다수의 사람들이 서로 비슷한 모습이 나타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물론 아직 정의되지 않은 개인적인 의견이다.)

끝으로,
그 시대에 좋은 머리(?)를 갖고 사대부로 출발하여 새로운 학문과 종교를 받아드리려다가 시대적 문화적 저항으로 유배되어 그것이 또 다른 좋은 기회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 우리에게는 여러 좋은 책을 남겨주신 정약용에게 감사를 드린다. 섬세함, 자상함, 그리고 의지를 가지고 알게된 지식을 지속하여 아들들에게 제자들에게 서신으로나마 알려주려는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근면하게 살고, 학문하는데 게을러지지 않도록 나와 내 가정, 그리고 내가 속한 공동체를 살리기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해야겠다는 사명감을 상기시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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