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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나는 나무에게 인생을 배웠다 - 우종영 / 메이븐 / 2019년

by 나를단련 2022. 6. 24.

저자는 30년 이상 나무를 돌보는 일을 해 왔다.
그 일이 직업으로 이름 붙여지기 전부터 나무의사 라는 직업을 일의 이름으로 사용하였다.
그 30년 동안 여러 나무들을 돌보면서 인생이 나무와 같다는 생각을 하며 하나하나 기록한다.

그리고 이 책을 빌어 젊은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꼰대 같지 않게 하고 있다.
나무는 지나친 관심과 돌봄을 하면 오히려 좋지 않다고 한다.
이것은 나무 뿐만이 아니라 애완동물도 그렇고 사람도 그런 것 같다.
그래서 저자는 나무에게 교훈을 받아 자식들에게 간섭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도 잘 성장했다는 것은 타고난 기질이 환경과 잘 어울려져서 그랬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비단 나무 뿐만이 아니라 다른 영역에서도 오랫동안 사랑과 열정을 가지고 직업을 지켜본다면 그 어떤 누구도 이 나무 의사와 같이 그 직업과 인생을 비교하는 이야기를 해줄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직업에 대한 깊은 애정과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풀어가기 위한 준비가 선행되어야 한다.

나무를 돌보기 위한 한 걸음 한 걸음에 여정이 쌓여 한권의 책이 되었다.
매 순간 얼마나 정성을 들여 그 순간을 보내며 기록해 왔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작가가 기록한 제일 처음에 주제는 '나무는 내일을 걱정하느라 오늘을 망치지 않는다' 라는 이야기이다.

우리는 살면서 내일 일을 자주 걱정한다.
내일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어디를 갈까 누구를 만날까?
그런 내일 일을 걱정하느라 오늘을 충실하게 살지 못하는 때가 많다.

작가는 이야기를 하면서 디귿 자 모양의 소나무를 예로 들어 주었다.
그 소나무는 사람들이 보기에 매우 신기 하였으나 매일 매일을 살아남기 위한 모양을 바꾸어 갔던 결과이다.

디귿 자 모양의 소나무가 처음부터 디귿 자 모양으로 성장하고자 사람들에게 신비감을 주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살아가겠다는 치열했던 생존의 몸부림의 결과였다.

어쩌면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작가도 매일 매일을 살기 위해 치열한 인생을 살아 가지 않았던가 생각이 된다.
지금은 나무의사로서, 글을 쓰는 작가로서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있지만 이 사람의 과거의 현재는 늘 생존의 몸부림이 아니었을까?

그것을 시간이지나 나무를 바라보면서 나무는 순간순간을 열심히 살아가지 미래를 위해서 고민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알았을 것이다.

성경에는 '염려가 내 키를 한자라도 더 크게 할 수 있느냐?' 라고 묻는다.
그만큼 미래에 대한 걱정이 지금 현재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다는 것을 이야기해준다.

나무는 인간처럼 생각하지 않더라도 본능적으로 본인의 생존을 위해 즉각 반응한다.
우리도 우리의 생존을 위해 미래를 고민하지 말고 즉각 행동으로 옮겨야 될 것을 찾아 옮겨야 한다.

내일을 걱정하느라 정작 중요한 오늘을 망쳐서는 안된다.



일단 잘 멈추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이 제목에 마음이 끌린다.
나무는 계절에 따라 성장을 달리하는데 여름까지는 열심히 잘 하다가 여름이 깊어지면 성장을 멈추기 시작한다.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그 적당한 순간에 멈추지 않으면 꽃과 열매를 피울 에너지가 남지 않기 때문에 나무는 스스로 성장을 멈춰야 할 때를 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멈춰야 할 때를 모르고 계속 성장 하려고 노력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 경우에는 때로는 목표하던 방향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계속해서 나가는 경우가 발생한다.
그렇게 잘못된 방향으로 나가고 있는 것을 깨달을 때는 잠시 쉬어야 한다 그리고 어느 방향이 맞는지 다시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 방향이 맞는가 깨닫기 위해서 가던 길을 멈추고 자신을 점검해야 한다.

우리가 사는 인생은 단 한 번뿐이다.
그래서 꼭 다른 방향으로 가야 할 이유가 있다.
그러기 위해선 주기적으로 멈춰 내가 가는 방향이 맞는가 살펴본다.


사람들이 나무를 심을 때 흔히 하는 실수

작가에 친구가 시골에 집을 지어 마당에 나무를 심고 자 작가를 불러 줘 원을 구했는데 그 친구가 이야기하는 나무들이 그 자리에 심으면 잘 살 수 없는 그런 보기만 좋은 방법으로 요청을 하였다.

그래서 작가는 나무의사라는 전문성을 가지고 친구에게 어떤 나무가 어떤 특성이 있으니 어디에 심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을 하였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나 역시도 나무에 대하여 전혀 아는 바가 없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아 그래 정말 나무가 필요로 하는 장소가 따로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는 그 이야기를 전해주면서 부모가 자기 자녀가 어떤 특성을 가진지 잘 모른다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내 자녀를 잘 안다고 자만하지 말고 자녀에게 뭐가 좋은지 물어보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한다.


자연의 이치에 맞게 살아간다는 것

나무는 성장할 것을 고려하여 널찍널찍 하게 심는 것이 아니라 묘목때는 좁게 부쳐 심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야 어린 나무가 서로 경쟁하여 생육이 더 빨라질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어느 정도 컸을 때 솎아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작가는 그 성장 경쟁에서 도태되어 사라져간 나무들에게 주목한다.
그 나무들은 좋은 나무를 만들기 위해 같이 키워지는 페이스 메이커 같은 역할을 했던 것이다.

우리 인간도 늘 내가 중심이라고 생각하며 살지만 자연의 섭리에서 객관적으로 우리를 봤을 때 우리는 페이스메이커 같은 나무일수도 있는 것이다.
그 객관적인 인간이 주관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은 아닌가? 나의 기준으로 세상을 살아가지 말고 세상의 이치를 잘 헤아리면서 살아가야 된다.



자꾸만 누군가와 담을 쌓게 된다면
탱자나무

마산에 와서 탱자나무라는 것을 처음 보았다.
나즈막한 담장으로 있었는데 작가도 그 것에 대하여 소개를 하며 탱자나무는 열매도 맛이 없고 사람을 막기 위한 담 보다는 주술적인 의미가 있다고 소개한다.

내가 스무살이 넘어 탱자나무를 처음 보았는데 굉장히 인상 깊었는지 탱자나무가 기억에 많이 남는다.

탱자나무는 담이 있다고 보여 주는 것이지 막기 위해 세워놓은 담이 아니다.
따라서 사람이 각자가 지켜야 할 선이 있는 것을 보여 준다.
그 선을 넘지 못 하게 하기 위해서 엄청나게 높은 담을 쌓을 필요는 없다.


이렇게 몇 가지를 이야기해 보았다.
나도 작가처럼 내 직업에 깊은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살고 있는가 그리고 50대를 앞두고 삶의 의미를 얼마나 많이 곱씹고 있는가 생각해 본다.

그리고 내 삶을 찬찬히 복기하며 기록해야할 것들은 기록해 놔야 하겠다.
그렇게 해서 인생의 교훈을 추려내서 후세에게 전하든가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해 주고 싶다.

그것이 거창하지는 않아도 좋다.
그저 인간으로서 살아온 자취를 남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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