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 기념집회
성령을 갈망하는 교회
류호준 목사
구도자의 영성
시편 42:1-11
모세오경은 토라라고 말하며 이야기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요단강 이편에서 이야기는 끝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직도 광야에 있습니다.
우리도 광야에 있습니다.
무엇을 입을까 먹을까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걱정하는 것은 이방인이라고 하십니다.
만나는 만후라는 히브리어에서 나왔는데 이것은 무엇인가 하는 감탄문입니다.
하나님은 40년 동안 계속해서 양식을 주십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의 은혜는 지천에 깔려 있습니다.
그 은혜로 우리는 살아 갑니다.
이게 왠 은혜입니까?
모든 짐승은 땅을 보고 살지만 우리는 하늘을 보고 살 수 있는 존재 입니다.
우리는 매 순간 하나님의 은혜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사람들이 아닙니다.
나는 일상에서 하나님을 신뢰하고 사는가?
차를타고 어디를 가면 내비게이션에 경로설정을 하고 갑니다.
가다가 잘못가면 경로를 재 설정해야 합니다.
오리엔테이션은 경로를 설정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경로를 설정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등불입니다.
등불은 내 앞만 보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매일 들고 가는한 우리의 바로 앞을 비춰줍니다.
곡 : 내일일은 난 몰라요 - 안이숙
인생에 여러일로 경로를 이탈할때 우리는 무릎꿇고 기도합니다.
시편이 5권으로 되어 있는 것처럼 모세오경도 5권인데 하나님의 가르침의 내용입니다.
이 세상의 어떤일도 우연히 되는 것은 없습니다.
우연은 창조에 반대되는 말입니다.
우연의 반대는 섭리입니다.
하나님의 큰 섭리 입니다.
그냥 나타나는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의 은혜 가운데서 이해되지 않더라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무슨일을 당해도 예수 의지합시다.
이것이 신앙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자는 하늘 위로를 얻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살든지 죽든지 당신의 유일한 위안은 무엇입니까?
나는 나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나의 신실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어디로 가야할지 모를때 우리는 무릎꿇고 기도하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며 구속자입니다.
신앙고백서에 예수님은 죽으셔서 지옥에 내려갔습니다.
우리가 절박한 상황 가운데 있을때 우리는 생지옥이라고 하는데, 그것을 신앙고백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가르쳐 주는 것이 토라입니다.
시편도 5권으로 되어 있습니다.
1-41, 42-72, 73-89, 90-106, 107-150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토라를 읽어 달라고 합니다.
에스라가 토라를 낭독할때 레위인에게 해석하게 하며 성전을 재건하고, 예배를 합니다.
회복된 성전에서 기도와 찬양집으로 만든 것이 시편입니다.
이것도 마치 토라처럼 5권으로 되어 있습니다.
시편은 우리가 길을 잃었을때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송하는 것입니다.
절박한 마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우편 보좌에 앉아 우리를 위해 기도하십니다.
은퇴후에 인생은 덕분에 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우리의 인생은 은혜로 주어진 선물로 사는 것입니다.
시편 각권의 마지막에는 찬양과 아멘, 할렐루야가 있습니다.
할렐루는 우리들 함께 찬양합시다.
야는 야훼.
마지막인 150편은 전체가 찬양입니다.
시편은 찬양시 보다 탄식의 시가 더 많습니다.
마치 우리의 인생을 대변하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대답하지 않으시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때로 위선자 처럼 표현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 신앙이 연약해도 하나님이 신실하시므로 나의 인생을 겁니다.
곡 : 오 신실하신주
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11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나는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이와같이 찬송가로 말하면 후렴과 같습니다.
이 시인은 너무나 낙심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고 하십니다.
우리에게 의심과 확신은 함께 있습니다.
1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하나님이여)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하나의 시행은 두소절로 되어 있습니다.
창세기에 하나님이 에덴동산을 만드시고 네강(사대강)을 만드셨습니다.
모든 문화와 문명은 강 하류에서 시작됩니다.
시냇물은 라틴어로 아데폰테스인데 물의 근원인 수원이라는 뜻을 같고 있습니다.
사슴은 그 물의 수원을 찾습니다.
그곳에 가장 신선한 물이 있습니다.
그곳에 에덴(기쁨)이 있습니다.
그곳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나님과 멀어지면서 어둡고 춥고 배고픕니다.
그곳이 지옥입니다.
가인은 하나님을 떠나 놋강(방랑, 유랑)으로 갑니다.
자신의 존재로 부터 배척을 받습니다.
하나님을 떠나면 방랑하고 유랑합니다.
우리에게는 본향이 있는 사람들 입니다.
우리는 강 하류가 아닌 상류를 향하여 원래 있었던 곳을 향하여 가는 사람들 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정신 차려야 할때입니다.
주여 사슴이 물의 근원을 찾아 올라가는 것처럼 우리도 주님을 찾아 올라갑니다.
곡 : 목마른 사슴
일상자체가 예배의 현장입니다.
어느것으로도 바꿀수 없는 기쁨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이 구도 입니다.
그 길은 예수 그리스도 입니다.
삿보로에 한 기독교 여선생님이 있었습니다.
마을에서 성경과 서예를 가르치다가 어느덧 100살이 되었을때 동네 사람들 몇몇이 모여 생일잔치를 했는데, 멀리 영국 BBC방송국에서 다큐를 찍습니다.
기자가 100년의 시간을 어떻게 표현하실까요? 라는 질문에 우메꼬 여사는 먹을 갈아 풍도기 라고 씁니다.
바람부는 인생길을 기도하며 걸어왔습니다 라는 말이지요.
우리 삶은 바람부는 인생길인데 의지할 곳은 하나님께 기도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사슴이 물을 찾으러 갈때는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험악하고 적대적인 세상입니다.
누구를 바라보고 신뢰하고 살아갈 것입니까?
나의 소망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을 찾으세요.
하나님의 은혜는 어디에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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