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몬, 베드로
문세원 목사
마가복음 14:27~42
개역개정 마가복음 14장
27.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이는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들이 흩어지리라 하였음이니라
28.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29. 베드로가 여짜오되 다 버릴지라도 나는 그리하지 않겠나이다
30.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이 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31. 베드로가 힘있게 말하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이와 같이 말하니라
32. 그들이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33.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실새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사
34.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하시고
35. 조금 나아가사 땅에 엎드리어 될 수 있는 대로 이 때가 자기에게서 지나가기를 구하여
36. 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37. 돌아오사 제자들이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시몬아 자느냐 네가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38.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39. 다시 나아가 동일한 말씀으로 기도하시고
40. 다시 오사 보신즉 그들이 자니 이는 그들의 눈이 심히 피곤함이라 그들이 예수께 무엇으로 대답할 줄을 알지 못하더라
41. 세 번째 오사 그들에게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그만 되었다 때가 왔도다 보라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42.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우리는 누구나 인생의 주인공이 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살아가면서 주인공이 아님을 깨닫고 절망한다.
가난, 굶주림, 애통함에 우리는 비참함을 느낀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바닥을 발견할 때 정말 비참함을 깨닫게 된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한방 중에 감람산에 올라갔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다 자신을 버린다고 말하신다.
이 말씀에 베드로가 다 버릴지라도 자신은 아니라고 말한다.
베드로의 이름은 시몬이다. 예수님은 반석이라는 뜻의 베드로(게바)라고 이름을 불러주셨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배신하지 않는다고 장담했다.
예수님은 닭이 두 번 울기전에 네가 반드시 나를 부인할 것이다라고 말씀했다.
인간의 맹세는 덧없다.
베드로의 말은 진심이었다.
베드로는 붙잡혀간 예수님을 멀찍이 따라가서 주변사람들이 의심할 때 예수님을 부인했다.
죽을지언정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겠다고 했던 베드로는 예수님 말씀처럼 예수님을 부인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배신할 수밖에 없었던 죄일일 수밖에 없었다.
마가는 베드로뿐 아니라 벌거벗은 채 도망하는 자신의 모습을 성경에 기록했다.
베드로의 실패는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지 못하여 예견되어 있었을까?
겟세마네에서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을 생각하며 기도하셨다.
오랫동안 준비한 것이었지만 두려웠다.
육신의 두려움보다 더한 공포에 예수님은 두려웠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짐의 두려움이었다.
하나님의 진노의 자리에 홀로 올라가야 하는 것이었다.(영적인 죽음)
그래서 이 잔이 지나가길 간절히 기도했으나 아버지의 원대로 하시길 간구했다.
세 번의 기도는 예수님 자신의 뜻은 사라지고 아버지의 뜻만 남았다.
이미 겟세마네에서 승리하셨다.
피곤하고 지칠 수 있었지만 베드로는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는 작은 자 일 수밖에 없다.
여러 번 깨웠으나 또 자고 있었다.
기도하지 못해서 실패하고 배신했었을까?
제자들의 실패는 이미 결정되어 있다.
우리도 그렇다.
우리는 양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원래 능력이 없었다.
예수님은 그런 제자들을 꾸짖지 않으셨다.
겟세마네는 기름 압착기라는 뜻의 맷돌과 같은 말이다.
예수님은 맷돌이 갈듯이 땀이 핏방울처럼 흘리셨다.
예수님은 실패하지 말라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실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랑받는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기도하라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라고 착각할 때 마귀의 시험에 무너지게 된다.
우리는 원래 실패할 수밖에 없는 죄인에 불과하다.
우리는 죄인이며 주인공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할 때 낙담에 빠지지 않고 기도할 수 있는 것이다.
아직 바닥에 떨어지지 않았을 때 우리는 시험에 들 수 있다.
우리가 바닥을 찍을 때 주님은 우리를 일으켜 세워주신다.
예수님은 실패한 우리를 위해 홀로 기도하면서 십자가를 향해 나가신다.
제자들은 자신을 위해 아무것도 못하고 자고 있는데 예수님이 스스로 간절히 기도하고 십자가를 향해가셨다.
기도의 대부분은 제자들이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시험에 낙심하지 않도록 승리하도록 간절히 기도하셨다.
예수님은 오늘도 동일하게 연약하고 실해하고 낙담한 바닥에서 올라올 수 없는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계신다.
베드로는 약속을 기억하여 갈릴리로 간 것이 아니다.
그저 주님 만나기 전 바닥에 내려간 것이다.
예수님은 처음 베드로를 만났던 그곳으로 가서 처음 만났던 것처럼 다시 부르신 것이다.
베드로를 다시 회복시켜 주셨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
죄인을 예수님은 다시 제자로 회복시켜 주셨다.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를 부르신다.
우리는 실패은 바닥에서 주저앉아 있는가?
주님은 그 바닥에서 우리를 기다리신다.
우리는 원래 대단한 베드로가 아니었다.
우리는 주인공이 아니었다.
착각하지 말라.
우리가 그럴듯해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이 아니다.
대단한 베드로가 되길 바라시지 않는다.
우리를 위해 주님이 행하신다.
우리는 주님의 손에 있는 주인공이 아닌 작은 죄인이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우리를 처음 만났던 곳 갈릴리로 찾아오시는 것이다.
그 사랑을 고백하면 우리를 회복해 주시고 살리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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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예수님을 만났던 때가 언제인가?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말이 있듯이
그 때는 내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예수님께 전적으로 의지했을 때였다.
그때로 돌아가 다시 예수님을 만나야 한다.
또한 모든 일상의 선택에 있어서 하나님께 여쭈어 나아간다. 내 인생을 주님께 맡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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